영화 '조조래빗' 리뷰: 한 번도 안 본 사람을 미워하는 이유

'혐오'라는 것은 언제,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영화 ‘조조래빗’은 그 흔한 ‘전쟁’이라는 서사에 한 소년의 '성장'이라는 서사를 입힌 영화이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으로 아카데미를 휩쓸고 있을 때, 아카데미에서 '각색상'을 받은 작품이다.

 

※ 이후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을 수 있으므로 유의하여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혐오'의 기원

영화 속 10살의 ‘조조’(로만 그리핀 데이비스 분)에게 ‘전쟁’은 어떤 의미였을까.아직 전쟁의 무거움을 알기에는 어린 나이. 그는 그저 또래들보다 폼 나게 총을 쏴 보고 싶은 어린 아이일 뿐이다. 그의 상상 속에는 언제나 ‘아돌프 히틀러’가 좇아다니며 사상을 주입한다. 그의 상상 속 히틀러는 실제 인물보다 훨씬 다정하지만, '조조'에게 지속적으로 유태인에 대한 혐오를 심는다.

'혐오'의 위기, 그리고 '성장'

그러던 어느 날, 엄마와 단둘이 살던 집 이층 벽장에서 조조는 귀신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란다. 단둘이 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셋이서 살고 있었던 것. 그 귀신인 줄 알았던 존재는 이미 세상을 떠난 ‘조조’의 누나와 나이가 비슷한 유태인 여자 아이, 엘사(토마신 맥켄지 분)였다.홀로코스트가 한창이던 그 시기, ‘조조’는 열성 나치당원을 자처하고 있었지만 그의 엄마(스칼렛 요한슨 분)은 조용히 자신의 딸 또래의 여자 아이를 집에 들여서 보호하고 있었던 것. ‘조조’는 ‘엘사’와의 만남을 통해서 그동안 자기가 알고 있던 좁은 세상에서 한 걸음씩 나오게 된다.

'조조래빗'에게 '성장'이란

영화는 암묵적으로 나치가 심어놓은 프레임에서 한 발자국씩 나오는 것이 바로 '조조'의 성장임을 암시한다. ‘조조’가 ‘엘사’를 혐오 받는 유태인이 아니라 하나의 사람으로 대하기까지 영화는 그리 오랜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린 조조는 엘사를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열정과 순수함을 다해 사랑하게 된다. 바깥 세상과 단절되어 케이지 안에 살아가는 엘사는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인 이 꼬마 아이를 통해 사랑을 공급받는다. 그러는 사이에 그녀는 '조조'에게 혐오와 편견으로 얼룩진 지금의 세상보다 더 의미 있고, 더 넓은 세상을 알려주게 된다.
‘조조’는 바깥 출입을 자유스럽게 할 수 있는 아이였지만 나치가 만들어놓은 혐오의 세상 속에 갇혀 사는 반면, ‘엘사’는 책장 안에 스스로를 감금하고 살면서도 더 넓은 세상을 산다. ‘조조’가 ‘엘사’처럼 되어가는 것을 ‘성장’이라고 부른다면, 우리의 사회의 성숙도는 얼마나 될까?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

세계를 호령할 것 같던 나치와 독일군은 연합군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졌고, 아돌프 히틀러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맞았다. 어깨 가득 독일군이라는 자부심이 붙어 있던 ‘조조’에게 독일의 패전은 어떤 의미였을까? 만약 독일이 승전했다면 어떠했을까? 이성적이라고 소문난 독일인들조차 ‘민족주의’라는 마약에 빠져 다른 민족을 그렇게 대량 학살했었던 과거는 우리에게 어떤 것을 알려주는가?바야흐로 세계대전은 끝이 나고, 냉전의 시대도 종식이 된 듯 하다. ‘조조’가 살아계시다면 꼬부랑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만큼 시간이 흘렀다. 이제 유태인에게 뿔이 달려있는 줄로 알고 있는 꼬마아이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형태로 여전히 전 세계에는 이 '혐오' 의식이 뿌리박혀있다.
‘조조래빗’이 좋은 영화인 이유는 ‘전쟁’이 가지는 폭력성보다 ‘혐오’가 어떤 의미에서 더 비극적일수 있음을 은은히 알려주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전쟁’은 물리적으로 사람들을 공격하지만 ‘혐오’는 사람들의 마음 깊숙한 곳을 침투한다. 그렇기에 ‘전쟁’이 끝나도 ‘혐오’는 끝나지 않는다. ‘조조’도 '조용히 자신의 할 일을 하고 다니던' 엄마가 있었기에 그 혐오를 멈추고, 더 자랄 수 있었다. 조조의 엄마는 단 한번도 나치에 빠진 아들에게 사상을 바꾸려 시도하지 않았다. 다만 사랑으로 엘사를 숨겨준 그녀의 행동, 비극적으로 맞이한 죽음이 ‘조조’의 허영심 가득한 민족주의의 종식을 이끌어냈다. 하지만 주변에 나치 완장을 단 어른들 밖에 없었던 아이들은 끝까지 히틀러의 거짓말에 속을 수 밖에 없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을 미워하는 이유

코로나의 여파로 온 지구촌에 혐오가 만연해있다. 사실 이것은 코로나 때문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던 정서가 ‘전 세계적 재난’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표면화될 뿐이다. 우리의 자녀들이 처해있는 상황을 보라. 주변 어른들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배어드는 혐오의 정서. 나라와 나라간, 지역과 지역간의 혐오들도 있지만 때로는 특정 종교, 특정 성씨에 대한 것들도 있고, 특정 성향,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 대한 혐오도 전이된다. 아이들은 단 한 번도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을 미워하기 시작한다.

'홀로코스트'와 '분노의 나라'

나는 이것이 세계대전 못지 않은 비극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조조래빗’이 은은히 말하는 것처럼 ‘성숙’이란 더 다양한 사람들을 품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주변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자란다. 조조는 독재자 ‘히틀러’와 ‘나치’에게 조종당했다. 우리의 아이들은 다름 아닌 부모와 주변의 어른들에게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부모가 성장해 있지 않으면 그것은 곧 아이의 미성숙으로 이어진다. 혐오는 유산이 되어 대대손손 이어진다. 그렇게 하나의 국가는 ‘휴화산’처럼 다시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 있는 ‘분노의 나라’로 서서히 익어간다.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혐오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것은 직접 경험에 의해서라기 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주변의 사람들의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 의해 전염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직접 경험했다 할지라도 '표본 수'가 상당히 적어서 자신의 편견이 그 경험을 해석해내버린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그러한 혐오는 성인이 되면 '만성'이 되어 되돌리기 어렵다.

 

'혐오'로 물들지 않으려면

'혐오의 가정', '혐오의 사회'가 되지 않으려면 ‘조조’네 엄마 같은 어른들이 많이 필요하다. ‘혐오의 사회’ 속에서도, 다수가 혐오의 손가락질하더라도, 용기를 내어 그 오만과 편견을 사랑으로 녹일 수 있는 사람들 말이다. 자기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나와 다른 존재들을 잡아 일으켜 세우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어른들이 주변에 있었더라면 우리의 아이들은 맹목적 혐오에 빠져 사람들을 미워하는데 빠지는 것이 아니라 세계를 품을 수 있는 글로벌 리더로 자랄텐데 말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군중들을 물고기를 몰듯이 이리 저리 몰아가는 세력은 늘 존재하게 마련이다. 그들은 혐오가 존재해야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기에 혐오에 기생하여 살아간다. 그들은 사람들이 '성장'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성장을 방해하기 위해서 근거가 미약한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심기도 하고, 가짜 뉴스를 퍼뜨리기도 한다. 그러한 뉴스들은 군중들이 원래 가지고 있는 혐오를 더 강화할 수 있도록 맟춤식으로 주어진다.
‘조조’의 성장은 이렇듯 일반적인 서사가 아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성장의 기회가 아니다. 보통은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고, 비슷한 혐오를 조장하며 산다. ‘2층 책장에 존재하는 유태인 누나’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기회가 아니다.하지만 필자는 우리가 ‘조조’ 와 같은 환경이 아니라도 성장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자신이 자라난 배타적 환경을 끊임 없이 객관화하고, 조건 없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성장법이다.

이제 우리 '조조'들의 차례이다

‘혐오’는 본디 인간의 마음 한 구석에 내장되어 있다.전쟁은 끝났지만, 사실은 끝나지 않은 셈이다.이 보이지 않는 전쟁, 이제 우리 ‘조조’들의 차례이다.더 이상 우월감에 속지 않고,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이들.
그들이 조조와 엘사처럼 혐오의 전쟁을 끝내고, 자유롭게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