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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어주는 남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리뷰: 첫 사랑과도 같은 영화

[밴드, 첫 사랑과도 같은 기억]

 

나는 중학교 때, 기타를 독학했다. 

지금처럼 유투브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저 코드집에 그려져있는 손가락 모양대로 따라하며 익혀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니 코드가 손에 익었다. ‘연주’는 아니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반주’하며 노래를 할 수 있었다.

현실은 방 구석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게 전부였지만, 나는 밴드를 꿈꿨었다. 10대의 뜨거운 감성은 그렇게 방구석에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조금 실력이 나아진 다음부터는 교회에서 반주를 하기도 하고, 사람들과 함께 호흡할 수도 있었다. 그건 너무 착한 방식이었다. 뜨거움을 담아내려면 적어도, 드럼과 베이스, 일렉과 싱어가 함께 하는 좀 더 ‘하드’한 무엇인가가 필요했다. 

내가 좀 더 실행력이 있는 소년이었다면 콘서트도 다니고, 돈을 들여 뭔가를 더 배웠을 것이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나는 너무 모범생이었다. 그렇게 일탈을 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없었다. 부모님은 보수적인 크리스챤이어서 그런 음악을 듣는 것 자체를 이해해주실 수 있는 분들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들조차도 사회적인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나의 ‘모범생’ 이미지 때문에 아마 내가 밴드를 꿈꾸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웃을 것이다. 

유일한 탈출구는 밴드 음악을 찾아서 듣는 것이었다. 국외 음악 중에는 메탈리카, 헬로윈을 주로 찾아 들었던 것 같고, 국내 밴드 중에서는 단연 넥스트였던 것 같다. 넥스트의 보컬이자 리더였던 신해철은 폭넓은 사회적 주제를 가지고 나왔었고, 나는 그의 저항과 함께 했다. 그는 삶과 죽음에 대하여, 사람들의 세태에 대하여, 도시의 피폐한 삶에 대하여 노래했다. 

밴드에 대한 설렘을 가지고 있던 내게 가장 좋았던 음반은 넥스트의 공연 실황이 담긴 것이었다. 그 어떤 스튜디오 음반도 밴드의 라이브 공연을 담아낼 수는 없었다. 사람들은 보컬인 신해철만 보았을지 몰라도, 나는 각 주자들이 솔로로 연주하는 때가 참 좋았다. 기타리스트의 전설, 김세황은 일렉을 자신의 손처럼 사용하곤 했다. 드럼은 비트를 쪼갤 수 있을 때까지 쪼개서 시간을 거의 분자 단위로 쪼개놓는 듯 했다. 보컬은 혼자 노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관객들의 호흡을 이끌어내며 그들과 함께 했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렇게 강렬한 음악들과 거리가 멀어졌던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가는 면도 있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면서 분출되어야 했던 나의 에너지도 점점 안정세를 찾았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믿는 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 친밀하게 동행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을 때 즈음에는 그 저항 정신이 많이 퇴색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밴드는 나의 첫사랑에서 추억으로 변해갔다.

이 정도가 나의 밴드에 대한 매우 소극적인 추억이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이지만 마치 많이 걸었던 길 같은 느낌이랄까. 이렇다할 추억도 없지만 추억이 많은, 그런 느낌.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첫 사랑의 풋풋한 감정과도 많이 비슷한 것 같다.

 

 

 

[저항하는 '형님들의 형님'들을 만나게 해 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첫 사랑은 잊혀지다가도 함께 했던 공기, 음악, 향기만 나도 다시 기억이 살아난다고 했었던가.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마치 그와 같았다. 내 무의식의 한 구석에 틀어박혀있던 저항 정신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혹자들은 ‘건축학개론’, ‘너의 결혼식’을 보며 첫 사랑을 떠올리고 심장을 부여잡는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러했던 것 같다. 

‘퀸’은 나와 세대가 맞지는 않다. 내가 태어난 다음 해인 1985년이 이 영화의 엔딩의 시점이다. 우리나라 ‘문화방송’에도 생중계 되었다는 라이브 에이드. 나는 그들의 전성기를 경험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의 마지막에서 무대를 장악하는 프레디 머큐리를 보며 오는 깨달음은 분명했다. 

‘아! 이 분이 내 어린 시절 만났던 형님들의 형님이시구나’

 

[어느 프레임에도 담기고 싶지 않았던 그들]

‘퀸’의 가사는 어렵다. ‘네이버 영화’에서 ‘명대사’를 쓰고 추천하는 란이 있는데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대사가 ‘갈릴레오가 누구야?’이다. 가사에 뜬금없이 갈릴레오가 등장하니 당연히 나올만한 질문이다. ‘갈릴레오’ 뿐 아니라 ‘비스밀라’, ‘바알세붑’처럼 기독교 문화권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단어들도 많이 등장한다.

그렇다면 ‘퀸’은 반기독교 정신을 담은 그룹인가? 누군가는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들은 세상이 말하는 그 어떤 범주에도 들고 싶어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인도인도 파키스탄인도, 그렇다고 영국인도 아니었던 프레디 머큐리. 그 어떤 범주의 사람들에게도 ‘우리’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을 그는, 스스로 ‘우리’가 되기를 거절한다. 세간(世間)의 정의 따위에는 묶이고 싶지 않은 마음, 그것이 프레디 머큐리가 추구했던 길이며, 그 길의 언저리에 그의 가사들이 흩어져 있는 것 같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면서 프레디 머큐리가 음반의 타이틀로 넣고자 분투하던 ‘보헤미안 랩소디’의 ‘보헤미안’은 특정 지역의 이름이라기보다는 그 지역에서 살던 집시들의 자유로움을 표현한 것이라고 본다. 그는 그렇게 누구보다도 자유롭지만, 누구보다도 외롭게 삶을 살아갔다. 그 어느 범주에도 들지 않은 채로 말이다.

 

[‘동성애자’ 프레디. 환호 속의 깊은 공허함]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데 아마 공통적인 반응을 했던 시퀀스가 있었을 것이다. 프레디가 동성애자였던 것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놀랍지 않았겠지만 사전 정보가 없었던 사람들에게는 너무 갑작스러웠을 그 장면. 나 역시 그러했다. 남자가 유혹해올 때,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갑작스레 입을 맞춰버리니 당혹스러울만도 했다.

아마도 프레디는 스스로를 전형적인 ‘동성애자’로 인식하지는 않았던 듯 하다. 그는 어느 카데고리에도 담기기 싫어했으니까. 그의 평생 연인인 ‘메리’도 있었고,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메리’ 외에도 다른 이성의 연인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동성의 ‘연인들’도 많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한 판단은 각자의 몫이지만 나는 무엇보다 그의 ‘외로움’에 공감했다. 수만의 관객들이 프레디를 향해 환호하지만 여전히 그 환호는 프레디를 향한 것이 아니다. ‘퀸’은 사랑받았을지 모르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끝까지 사랑받지 못한 듯 하다. 그는 항상 목말라 보였다. 갈증을 호소하지만 먹는 것마다 생수가 아닌 기름이나 배설물을 먹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동성애에 대하여 옹호하는 입장은 아니고, 프레디의 외로움이 동성애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다만 인간 내면의 목마름, 그 어떤 것도 채울 수 없는 그 깊은 심연과도 같은 공허함을 프레디의 삶을 보면서 느낄 수 있었다. 

 

[저항과 자유, 그 내면에 있는 허무함]

나도 10대를 보내면서 차오르는 에너지를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결국 안식할 수 있는 곳을 찾았던 것을 기억한다. 내 마음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날려버릴 수 있는 대상, 나의 향방을 알 수 없는 저항을 종식할 수 있었던 대상,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신앙이었다. 

‘퀸’은 어느 프레임에도 담기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노래했고, 그렇게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대중들에게 힘과 소망을 주었다. ‘챔피언’, ‘we will rock you’와 같은 곡들은 지금도 여러 경기장에서 선수들을 독려하는 노래로 열창되고 있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의 프레디의 삶은 돈과 명예, 그를 좋아해주는 사람들로 가득했을지 모르지만 뭔지 모르게 텅텅 비어보였다. 마음 속의 빈 곳을 채우고자 여러 사람들을 만나지만 결국 그들이 프레디를 채워주지 못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항과 자유는 좋은 것이다. 특히 문화적 창작물을 내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너무도 중요한 것 같다.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카데고리에 자신을 맞추고자 노력하는 것은 진정한 크리에이터의 자세는 아닐 것이다. 나는 자유와 저항의 정신이 사춘기에 잠시 피어오르는 신기루와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며, 그것이 종말을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한 인간의 인생에 있어서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정해놓은 틀 안에 갇히지 않는다 해서 진정한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다. 자유는 사실 저항 그 너머에 있는 것 같다. 

 

 

[진정한 자유에 대하여]

나는 신에게 귀속되어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자유롭다. 메탈이나 밴드 음악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좋다. 누가 나에게 뭐라고 무시해도 관계 없다. 내 마음이 풍요롭기 때문이다. 내가 의지하는 신에게 충분히 사랑받았고, 지금도 사랑받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나에게 옛 추억을 소환해주었다. ‘퀸’과 함께 딸려나온 수많은 밴드들이 있다. 생각만해도 다시 가슴이 뛰는 기억들이다. 다만, 다시 되돌아가지는 않는다. 자유를 갈구하던 그 시절의 에너지는 그것대로 의미가 있었다. 이제 나의 갈 길을 찾는 나는 저항하지 않아도 자유롭다. 그 진정한 자유를 프레디에게도 선물해주고프다. 

가여운 프레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