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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읽어주는 남자

영화 '스윙키즈' 리뷰: 전쟁보다 중요한 진짜 '전쟁'

당신에게는 가슴 뛰는 일이 있나요?

 

누구에게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보상을 받은 것과 같은. 그래서 그에 응당한 보상을 주려고 하면 오히려 내 가슴 뛰는 것이 그로 인해 사그라들 것 같아 그 보상마저 거부하게 되는 그런 일들. '브런치'의 작가들은 '글을 쓰는 활동'이 그와 같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재즈'가, 누군가에게는 '그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초월적 존재에 대한 추구'가 그와 같은 일이 될 수 있겠지만, 영화 '스윙키즈'는 'Dance is my life'를 불행하게도 전쟁통에 추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 '스윙키즈'는 'Dance is my life'를 불행하게도 전쟁통에 추구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 이후부터는 영화 ‘스윙키즈’의 내용이 자세하게 언급될 수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들이라면 스포일러에 유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의 시대적 배경

 

거제도에는 ‘포로 수용소’라는, 이름만으로도 무겁고 참혹한 역사 유적이 있다. 지금이야 역사 유적이지만 그 공간을 삶으로 메웠던 인물들이 있었을 것이고, ‘전쟁’을 ‘교과서’가 아닌 자신들의 ‘현재’로 겪어내야 했던 세대들이 있었을 것이다. 영화 ‘스윙키즈’는 우리의 아픔의 역사, ‘6.25.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강대국들의 이데올로기 경쟁의 대리전(代理戰)이 되어 국민 모두가 ‘빨갱이’ 또는 ‘반공분자’라는 이분법적 프레임 안에 갇혔던, 아니 갇혀야만 했던 이데올로기의 시대. 냉전(冷戰)이 끝났다지만 아직도 그 상처와 아픔이 반복되고 있기에 더욱 슬프기만한 우리의 역사. 그 슬픈 역사 속을 관통해야 했던 가슴 뜨거운 청년들, 그 슬픈 역사만 아니었다면 ‘카네기 홀’에서 수천명의 기립 박수를 받으며 열정적인 춤을 선보일 수 있었던 그 사람들의 이야기. 

때는 1951년, 종전을 눈 앞에 둔 것 같았던 전쟁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 와중에 전쟁 포로가 된 사람들 대다수가 거제도에 만들어진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어진다. 비록 전쟁 포로이지만 ‘자유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선전해야 했기에 이 수용소를 관리하는 미군은 포로들의 인권을 존중하고자 노력한다. 덕분에 포로로 잡힌 북한군들은 자유 진영으로 넘어오라는 초콜렛과 맥주에 담긴 따뜻한 ‘권유’와 한 배를 탔던 동지들의 냉혹한 ‘감시’가 공존하는 ‘복잡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수용소에 부임해 온 소장은 수용소의 대외적 이미지 메이킹을 위해서 전쟁 포로들로 댄스단을 구성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계획하게 된다.  

 

전쟁포로 댄스팀, '스윙키즈'를 소개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하달 받은 ‘잭슨’ 하사(자레드 그라임스 분)는 브로드웨이까지 진출했지만 인종 차별로 인해 빛을 보지 못한 비운의 ‘흑인’이다. 그의 댄스팀에 섭외된 멤버들은 지금 시대에도 감당하기 힘들만큼 다양성이 돋보인다. 전쟁에서 이미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여 인민 영웅으로 추앙받는 소련 댄스 유학파, ‘로기수’(도경수 분). 무려 4개 국어가 능통하지만 어쩌다 그런 시대에 태어나 그저 ‘전쟁통의 여자’에 불과한, 부양해야 하는 가족들 때문에 모든 것을 ‘돈’에 결부시킬 수 밖에 없는 ‘양판래’(박혜수 분). 잃어버린 아내를 찾기 위해서라도 유명세를 타야했던 사랑꾼, ‘강병삼’(오정세 분). 그저 춤이 좋아서 춤추는 것이 마치 숨쉬는 것과 같은 중공군, ‘샤오핑’(김민호 분).

 

영화 속 가장 흥미진진한 대결

 

소장(로스 케틀 분)은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포로 수용소에서 드라마틱하게 드러내어 자신의 입지를 다지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영화는 여러 대결 구도를 설치하고 있지만 필자가 가장 눈여겨본 대결은 이데올로기적 욕망을 댄스팀에 투영하고자 하는 소장과 ‘fucking ideology’를 외치며 그 프레임에 갇히기를 거부하는 댄스팀의 대결이다.             

영화는 아주 사실적으로 시대의 광기 어린 모습을 비춘다. 인민영웅인 기수가 미제 춤인 ‘탭 댄스’를 추러 다닌다는 것은 북한군 포로들 사이에서 이해받을 수 없는 배신 행위이다. 쵸콜릿을 먹는 일조차도 미제에 물드는 행위로 처단당할 수 있을만큼 그 시대는 철저히 ‘사상이 먼저다’. 그 광기는 어린이들에게도 예외가 없다. 영화 속 북한군 포로이자 ‘어린이’인 ‘기동’은 기수를 따라 탭 댄스를 배우고자 하는 순수한 열정이 있는 동시에 미제 타도를 외치는 공화국의 구호에 가장 먼저 선동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것은 비단 북한군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화는 수용소 바깥인 남한의 모습도 동일하게 비춘다. ‘병삼’의 잃어버린 아내, 매화를 향해 누군가가 ‘빨갱이다!’하며 손가락질 하자마자 도처에서 돌멩이가 날아온다. 그 와중에는 남한의 어린이가 앞장 서면서 카메라의 포커싱을 받는다. 

영화가 돌을 던지는 무리 중에 ‘어린이’에 포커스를 맞춘 것은 그만큼 시대의 이데올로기적 광기가 극심했음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예외가 없었던 사상 검증, 그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죽지 않기 위해서 죽여야 한다. 여자도 노인도 어린이도 예외가 없었던 것이다.      

 

'사상 선전'과 '승진'을 위한 댄스  JUST DANCE

 

포로 수용소의 소장에게 탭 댄스란 그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대결을 위해, 그리고 본인의 승진을 위해 존재하는 일회적 수단에 불과하다. 그저 크리스마스 공연에서 기자들에게 좋은 이슈가 되면 그만이다. 

하지만 기수를 비롯한 댄스팀에게 있어 탭 댄스는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댄스팀 멤버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른다. 인민영웅 기수에게 있어서 잭슨은 ‘미제의 앞잡이’이며, 판래와 병삼은 그저 ‘반동분자’일 뿐이지만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사회적 압력과 맥락을 완전히 제거한다. 그들에게 언어는 오로지 ‘춤’ 뿐이다. 그들은 이데올로기에 의해 태어난 댄스팀의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고, 그들의 팀을 사상 선전의 도구가 아니라 춤을 위해 존재하는 인간적인 공동체로 승화시킨다.           

필자에게는 백인들 속에서 평생 따돌림을 당해야 했던 흑인(잭슨)과 4개 국어에 능통하지만 여전히 차별 속에 살아가는 한국의 여자(판래) 중 ‘누가 더 불쌍한가’ 논쟁이 기억에 남는다. 판래는 영화 캐릭터 중 가장 참신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4개 국어에 능통한 생계형 30년대생 여성 캐릭터는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보지 못했다. 어쩌면 예술활동인 영화마저도 당시의 시대를 살아가던 여성들에게 대한 편견을 가져왔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논쟁에 끼지 못한 인민영웅 기수도 못지 않게 불쌍하다. ‘탭댄스라는거이 참 사람 미치게 만드는 거드만’이라고 고백하는 기수는 뼛 속까지 춤꾼이다. 그런 그에게 ‘위대한 수령’을 떠받드는 북한식 공산주의는 흑인에게 있어서의 백인우월주의, 여성에게 있어서의 남성우월주의보다도 더 큰 장애물이다. 영화는 춤꾼이 춤꾼답게 살아갈 수 없는 시대, 모두가 자본주의자 또는 공산주의자가 되어야만 하는 시대를 비추며 우리의 시대는 자유를 얻었는지를 묻고 있다.          

 

 

클라이막스였던 크리스마스 공연 제목 - '빌어먹을 이념 따위!'

 

영화는 크리스마스 공연을 클라이막스로 삼는다. 갈고 닦은 탭 댄스를 수많은 청중들 앞에 선보이고자 나온 잭슨 하사는 영혼 없는 탭 댄스 공연의 기획 의도를 읊조리다 도저히 안되겠다는 듯, 본인의 본심을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엄연한 가치 전쟁이다. 탭 댄스는 어떻게든 추겠지만 그 댄스가 사상의 선전물로 전락하느냐, 댄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느냐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이 공연의 제목을 ‘빌어먹을 이념 따위’로 공표한다. 소장의 표정은 일그러지고, 잭슨에게 소장이 미끼로 제시했던 일본 발령은 그 순간 물건너 갔지만 그에게는 자신의 발령보다 이 명분 싸움이 중요했던 듯 싶다. 하지만 술렁이던 청중들은 이내 인류 보편의 언어인 몸짓 앞에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인다.           

 

지금의 우리는 자유를 얻었는가?

 

영화를 보고 긴 여운이 남는다. 내 마음 속에 남은 질문은 단 한가지였다.

“지금의 우리는 자유를 얻었는가?”

냉전의 시대는 끝났다지만 시대를 거듭하더라도 사람들을 가두는 프레임은 언제나 존재하게 마련이다. 가슴 뛰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냉전 시대보다 많아졌음에 감사하지만 그럼에도 한편으로 마음이 아려오는 것은 왜일까.  여전히 거대 권력과 자본은 우리의 꿈과 희망을 금전적 가치로 물들이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지 않은가. 

영화는 마지막까지 '스윙키즈'들에게, 그리고 꿈을 찾는 이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우리의 현실을 비춘다. 한국전쟁 참전용사로서 노인이 되어 거제도를 찾은 '잭슨', 그를 포함한 참전용사들에게 포로 수용소 큐레이터가 당시 댄스팀의 역사를 소개한다. 그녀의 대본에 당시 댄스팀은 '테러리스트'로, 소장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자 노력했던 인물로 그려져있다. 앵무새처럼 그 대본을 읊조리는 큐레이터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와 너무나도 닮았다.

 

영화는 사회적 존재로서의 ‘나’가 아니라 그냥 ‘나’로서 존재하기가 그렇게 힘들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잭슨 하사와 그의 댄스팀이 내준 용기를 우리의 삶에 적용해본다면 어떨까. 우리는 가슴 뛰게 만드는 일을 끝까지 가슴 뛰는 일로 해낼 수 있을까. 

 

총과 칼로 싸우던 전쟁 속에 어쩌면 더 의미 있는 '소리 없는 전쟁'을 실감나게 보여준 영화, ‘스윙 키즈’였다.